디자이너의 손에서 빚어진 취향

완벽함보다는 우연성과 시간의 흔적이 때로는 더 아름답습니다. LINE VX 디자이너 다영님이 전하는 도자기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2025.06.13

일본에서 마주한 도자기의 매력

게임이나 회화 등 여러 취미를 시도해보았지만 그렇다 할 만한 것을 찾지 못하다가, 일본에서 생활하던 시절 동네 리빙샵의 도자기들이 VX디자이너 다영님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도자기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던 시절 흔히 보던 유명 도자기들은 매끈하고 완벽한 모양새였던 반면, 일본에서 우연히 본 그릇들은 거칠고 투박했지만 이상하게 더 정감이 갔습니다. 그렇게 도자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다영님은 귀국 후 감성이 잘 맞는 작가님의 클래스를 시작으로 도예에 첫 발을 디뎠습니다.

"디자이너다 보니 형태를 잡는 건 어렵지 않았는데, 유약을 바르는 게 훨씬 까다롭더라고요. 배합의 비율이나 순서에 따라 색감이나 질감이 완전히 달라지니까요. 계획한대로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 우연성이 있어서, 많은 테스트가 필요하고 재미있어요."

다영님은 모양이 잡힌 도자기에 유약을 칠하는 '시유' 작업에 금방 매료되었습니다. 유약은 색상과 입자의 두께에 따라 종류가 매우 다양해 무한한 표현이 가능합니다.

시간이 묻어나 나만의 것이 되는 빈티지

획일적이고 완벽한 것 보다는 우연적이고 다양한 것을 좋아하는 다영님의 취향은 도자기를 구매할 때에도 반영됩니다. 전기 물레보다는 손으로 빚은 느낌을 선호합니다. 일부러 더 누르기도, 덜 누르기도 하는 과정에서 형체에 생겨나는 생동감을 좋아합니다. 유광보다는 무광을 선호합니다. 무광은 유광 도자기들에 비해 덜 매끈하기 때문에 착색이 되는 등, 사용성이 더 묻어날 수 밖에 없지만, '새 것'의 느낌보다 '나만의 것'으로 만드는 게 좋습니다.

"일본은 '내 손이 닿으면 그건 내 것이 된다'는 감성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빈티지 문화가 발달했고, 새 제품보다 시간이 묻어나는 물건들을 선호해요. 예를 들어, 커피 자국이 베어난 컵 같은 것들요."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는 일본의 '코바야시 테츠야' 입니다. 유물처럼 세월감이 느껴질 정도로 거친 질감의 도자기들을 주로 만드는데, 같은 규격이라도 한점 한점 다 달라서 골라 사는 재미가 있다고 합니다. 

업무는 빠르게, 도자기는 천천히

동료 디자이너들은 다영님을 ‘리소스 관리의 달인’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성격에서 비롯되었다고 그녀는 말합니다. 급하면서도 조금은 게으른 성격이기도 한데, 그렇기 때문에 적은 노력으로도 빠르게 결과물을 얻기 위해 '효율화'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업무 시작 전 미리 구조를 설계함으로써 일의 우선순위와 순서를 정하고 반복되거나 불필요한 과정을 줄여 투입 시간을 단축시킵니다. 빠른 업무처리를 우선으로 하다보니 가끔은 디테일을 놓칠 때도 있지만, 일을 빨리 끝내고 남는 시간에 한 번 더 꼼꼼히 확인하는 습관이 생기면서 디테일까지 챙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도예를 할 때만큼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됩니다. 도자기는 더 천천히 조심스럽게 접근합니다.

"디자인 업무는 주로 디지털로 하기 때문에 쉽게 수정할 수 있지만, 도자기는 수정이 어려워요. 수정을 하더라도 흔적이 남을 수 밖에 없어요. 오히려 그런 점이 매력인 것 같아요."

어딘가 디자인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업무와는 정 반대의 성격인 점이 도예를 취미로 선택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취향, 생활 속 디자인

도자기는 실생활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취향이 가득 담긴 도자기에 어울리는 요리까지 예쁘게 플레이팅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릇을 만들 때는 용기 자체만이 아니라 내용물까지 상상해 디자인합니다. 음식 그릇 뿐만 아니라 화병, 화장솜 그릇 등 다양한 용도의 도자기를 만들다보니, 자연스럽게 그것이 놓일 가구와 공간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공간을 다양하게 채워보려는 니즈가 있어서 도자기 다음엔 유리를 배워보고 싶어요. 기회가 된다면 제 공간에 딱 맞는 러그도 만들어보고 싶어요.”

도자기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작업하는 것들은 기존 제품들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의 투자가 필요한 대신, 모든 디테일에 자신만의 취향을 담을 수 있습니다. 도자기에서 출발해 다양한 커스터마이징 굿즈의 매력을 깊이 이해하고 계신 다영님의 다음 작품들도 기대해봅니다.

글쓴이

Creative Lab